2024년 11월 작업의 깊이를 더해가는 아티스트겸 배우 하정우 전시를 추천합니다.
알록달록 색샐깔로 물들어가는 삼청동 초입,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학고재 갤러리에서 배우겸 작가 하정우 개인전이 열리고 있어요. 예전부터 로써의 활동계기와 스토리, 작품세계에 관심이 컸는데 15년째 꾸준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한번쯤 직접 방문해보고 싶었어요. 마침 경복궁 근처 한옥갤러리로 자주 방문했던 학고재에서의 전시라 더 기대가 되더라구요.
10월의 마지막날 방문한 하정우의 14번째 개인전을 소개합니다.
배우이자 15년차 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하정우 배우의 14번째 개인전 <Never tell anybody outside the family>을 소개해요
2024년 10월 16일(수)부터 11월 16일(토)까지 갤러리 학고재에서 진행되는 하정우 개인전에서는 올해 새롭게 제작한 신작 35점의 회화 작품을 선보이고 있어요. 본 리뷰에서는 아티스트 하정우의 작품세계와 신작 35점의 키워드, 작가노트, 주요작품들에 대해 알아볼께요. 본 리뷰는 작가인터뷰 및 학고재 홈페이지, 언론사의 전시홍보물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신작 35점"을 선보이는 14번째 하정우 개인전
2010년 첫 전시부터 벌써 15년차 작가인 하정우(Ha Jung Woo)는 일상적 사물이나 인물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작업을 이어왔어요. 그의 작품 속 인물은 간결한 선과 선명한 색채로 표현되어, 단순화된 형태가 두드러지고 과장된 얼굴에 눈, 코, 입을 강조함으로써 원시적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으로 그동안 작가는 일상적 사물과 인물을 중심으로 작업을 이어왔죠.
이번 14번째 개인전에서 작가는 오랜 시간 탐구해온 원시성을 바탕으로 순수한 정신과 원초적인 힘을 내재된 자아와 작가가 배우로서 수많은 인물을 연기하며 경험해온 페르소나를 대변합니다. 한국 전통 탈과 같은 민속 소재를 현대의 감각으로 해석하며 인간 정체성의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면모를 탐구한 #탈 #마스크 #카펫 등 키워드를 떠올리는 주제와 유성마커‘샤피’의 치밀한 패턴과 선으로 그만의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1. 내일을 버티려 시작한 그림, 작가 하정우
"만보의 시간을 지킨, 성실한 작가로써의 행보"
배우가 아닌 작가로써 14번째 문을 연 아티스트 하정우
작가 하정우는 2010년 경기도 양평 닥터박갤러리의 첫 개인전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전시회를 열었어요. 이번이 14번째 개인전으로, 단체전까지 합하면 25회나 된다니 여느 전업 작가 못지않은 성실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정우는 올해 연기 활동을 쉬면서까지 미술 작업에만 몰두했는데 이는 정신과 육체가 산만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특히 그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루틴’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9시부터 6시까지 마치 출퇴근하듯 작업 시간을 지켜나갔고 영화나 드라마를 찍으면서는 절대 지킬 수 없는 생활 패턴었기에 그의 성실함이 돋보이는 행보입니다.
"나는 그림 작업으로 불투명한 내일을 버텼다." (작가 인터뷰 중)
가족의 힘든 시기, 시작한 어려운 그림은 그에게 위로가 됐다.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2013년 영화 ‘허삼관‘ 연출과 촬영을 동시에 하며 극심한 불안에 시달릴 때 전남 순천의 숙소 벽에 캔버스 천을 걸어놓고 밤마다 하염없이 선과 그림을 채워넣었다. 전시 오프닝에서 하정우는 “2010년 첫 개인전을 시작할 때도, 그리고 지금도 직업적으로 큰 작가가 되겠다는 목표는 없다”며 “그림은 나에게 직업적인 성취가 아닌 개인적 감정의 한 부분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싶어 유명한 작가의 화집을 수없이 모으기도 했다. 그 때 그의 인생에 다가온 존재가 바로 장 미쉘 바스키아와 파블로 피카소다. 바스키아와 피카소의 화풍이 그의 그림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도 모두 이러한 경험 때문이다. 그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보며 유화의 세계를 알게 되고, 인물을 그리는 특별한 방식도 깨닫게 됐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 나온 카펫 시리즈와 탈 연작에서도 모두 바스키아와 피카소를 연상케 하는 구조와 구성을 느껴볼 수 있다.
하정우 개인전 <Never tell anybody outside the family>
장소 : 학고재 (종로구 삼청동 50)
기간: 2024년 10월 16-11월 16일 오전 10-오후 6시
관람료: 무료
대중교통: 시청에서 마을버스 11번 혹은 KT본사 앞에서 순환버스 01A 탑승 후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 하차
주차 및 교통: 서울 종로구 삼청동 근처라 주차 힘듭니다.
Tip: 주말에는 삼청동일대가 관광객으로 붐벼 평일 오후쯤 방문 추천드려요.
근처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및 여러 갤러리들이 있으니 함께 방문해보세요
|
2. 타이틀 : Never tell anybody outside the family
"Never tell anybody outside the family" _ 대부의 대사 중
전시의 타이틀인 “Never tell anybody outside the family”는 영화 「대부」의 대사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진명 미술비평가는 “믿을 수 있는 식구 말고 누구한테도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지 말라는" 의미로, 이는 곧 "내 안에 있는 진정한 나와의 만남을 원하는" 마음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그의 새로운 다짐을 담은 의미로, '가족 외의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말하지 말아라'는 뜻을 가진 이 문장은 하정우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대부'의 명대사다. 10년 넘게 그림을 그리면서도 한 번도 관객을 직접 대면하고 예술 세계를 이야기한 적 없던 스스로가 이 대사와 닮아있다 느꼈다고. 이번 전시를 계기로 스스로가 정한 한계점을 탈피하고 싶다는 다짐을 하며 제목을 지었다.
광장(廣場)의 자아와 밀실(密室)의 자아
하정우에게 자아는 광장(廣場)의 자아와 밀실(密室)의 자아로 나뉜다. 이 둘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영화예술과 회화예술이 모두 성공을 이룬다. 그런데 여기 역설이 있다. 밀실이 개인적이고 닫혀있는 공간이라면, 광장은 사회적이고 열려있는 공간이다. 동시에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라면,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하정우는 영화로 대중을 밀실에 가두고, 회화라는 밀실로써 자기 자신을 광장에 해방한다. 이러한 법칙은 고대부터 존재했다.
- 이진명 미술비평가, 「내면의 극장과 필력의 연기 - 하정우 작가의 회화 세계」 中 -
3. '카펫" 반복적인 선과 기하학 문양
카펫 (모로코에서 만난 카펫)
이번 전시는 학고재의 문을 열자마자 그의 200호짜리 대형 그림이 관객을 반긴다. 이 정도 크기의 그림을 그리는 건 그의 작업 인생 처음이다. 큰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선과 문양들로 빼곡하다. 모든 선은 뭉툭하지 않고 날카롭다. 이 날카로움과 세밀함을 구현해내기 위해 하정우는 수많은 재료 실험을 했다.
물감이나 아크릴 마커, 오일 마커는 그가 원하는 세밀함을 표현해내지 못했다. 그러다 문구점에서 유성마커 '샤피'를 발견했다. 의사들이 수술을 집도할 때 쓸 만큼 가늘고 세밀한 펜촉에 꽂혀버린 그는 광활한 캔버스의 선을 모두 이 펜으로 채워넣었다. 다른 데 눈길을 돌리지 않고 오직 작업에만 매달린 덕에 완성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7주면 충분했다.
유성마커'샤피' 200호를 채우다
카펫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은 신작은 반복적인 선과 기하학적 문양이 조화를 이룬다. 작가는 배경에 균일하게 선을 그려 넣어 화려하면서도 통일된 패턴을 만들어낸다. 토속적 문양을 활용하여 인간 내면의 직관을 시각적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이렇듯 이번 전시에 나온 하정우의 회화는 패턴과 문양으로 가득하다. 카펫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카펫’ 연작은 그가 촬영을 위해 모로코에서 5개월간 머물 당시 마주쳤던 문양에 마음을 뺏겨 그림으로 옮겨왔다. 자신만의 패턴을 창조하기 위해 오랜 실험을 거쳤다. 캔버스에 도자기를 그린 후 그 위에 문양과 패턴을 채운 작품도 나왔다. 패턴뿐만 아니라 축구선수들의 얼굴을 본딴 캐리커쳐, 현대적인 문양 등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4. 원시미술의 순수성을 담은 '탈, 마스크'
탈 시리즈 : 원시미술을 바탕으로 순수한 정신과 원초적인 힘
카펫 시리즈와 함께 이번 전시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연작은 ‘탈‘ 시리즈다. 타인을 표현하기 위한 연기가 마치 탈을 쓰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 영감을 얻었다. 연기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스스로와 맞지 않는 탈을 쓰고 살아간다는 인지적 충돌을 표현했다. 전통을 중시하는 학고재의 갤러리 이미지와도 맞닿아 있다고 여겨 서양의 가면 대신 한국의 탈을 선택했다.
그는 가면이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인 동시에 내면의 욕망을 표현하는 도구라는 점에 주목한다. 가면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방어 기제로 볼 수 있지만, 억눌린 욕망이나 자아를 표현하는 창구로서의 역할도 한다. 작가는 가면이 우리를 감추는 동시에 그 안에서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공존한다는 점을 시사하면서, 다양한 페르소나를 경험하면서도 그 속에서 진정한 자아에 다가가고자 하는 우리의 본질적인 갈망을 예술적 표현을 통해 드러낸다.
간결한 선과 선명한 색채로 또 다른 페르소나를 발견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근 1년간 작가가 화가로서의 시간에 매진하며 그린 회화 작품들을 선보인다. 하정우 작가는 일상적 사물이나 인물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작업을 이어왔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간결한 선과 선명한 색채로 표현되어, 단순화된 형태가 두드러진다. 과장된 얼굴에 눈, 코, 입을 강조함으로써 인물에 원시적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탈 연작 작가가 배우로서 수많은 인물을 연기하며 경험해온 페르소나를 대변한다. 한국 전통 탈과 같은 민속 소재를 현대의 감각으로 해석하며 인간 정체성의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면모를 탐구한다.
화풍의 변화와 진화
기존에는 주변인과 타인들의 얼굴을 그린 인물화를 주로 선보였지만, 이번에는 인물화보다 패턴이나 추상적 표현에 집중한 작품들이 이목을 끈다. 배경을 삭제하고 단순화했던 과거작과 달리 배경의 디테일을 신경쓰기도 했다.
하정우는 이런 파격적 변화를 택한 계기에 대해 묻자 “다른 작가들에 배우라는 직업이 가진 역마살 때문이지 않을까”이라고 했다.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경험인 모로코 생활도 배우로서의 삶이 가져다 준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는 “화풍의 변신이 변화보다는 진화라고 여긴다”고 자신했다.
하정우는 아이러니하게도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그림을 시작했다. 20대 중반 ‘선택받아야만 일할 수 있다’는 불안은 그를 옭아맸다. 아무런 지식도 없던 그는 무작정 문구점부터 찾아갔다. 남들이 모두 쓴다는 수채화 물감과 4B연필을 사들고 그림을 그렸다.
그는 "작가로서 인정받는 건 현재 나에겐 큰 의미가 아니다"라며 "지금 조금씩 깊이를 쌓아가면 언젠가는 무슨 평가든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평가에 귀 기울이는 대신 그는 매 순간 '만 시간의 법칙'을 떠올린다고 했다. 1만 시간 노력하면 무엇이든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법칙을 떠올리며 한 작품을 만들 때마다 최선을 다한다. 하정우가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을 두고 "아이를 낳는다"'는 표현을 쓴 이유다.
하정우는 기자간담회에서 "내 그림이 낯설고 서투르지만 진심과 마음을 담으면 분명히 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클릭] 예술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무료 공간 <청년예술청 SAPY> (6) | 2024.11.08 |
---|---|
[하정우 개인전] 큐레이터가 바라본 ‘아트 테이너’의 양면성 (17) | 2024.11.07 |
누구나 무료로 즐기는 예술/ 스터디/ 카페공간 (서울편) (0) | 2023.06.16 |